옛날부터 재래종인 능금을 재배했지만 최근에는 외국에서 도입된 개량종을 많이 재배하고 있다.
1884년경부터 외국 선교사가 각 지방에 몇 그루를 들여와 재식했는데, 처음에는 먹기 위해서가 아니라 관상수로 심었다.
그 후 영국인, 미국인, 캐나다인 등 외국 선교사와 일본인의 손으로 서울, 인천, 군산, 평양, 원산, 대구 등지에 복숭아, 서양배와 함께 식재되었다.
1901년 윤병수가 미국 선교사를 통해 다량의 사과 묘목을 들여와 원산 부근에 과수원을 만들어 좋은 성과를 거두었는데, 이것이 경제적 재배의 시작이라고 할 수 있다.
1906년 8월 농상공부(農商工部) 소속으로 서울특별시 뚝섬에 12㏊ 규모의 원예모범장을 설치하고 각국에서 각종 과수의 개량품종을 도입하여 품종비교 재배시험 등을 실시했다.
전세계에서 재배되는 품종은 700여 종이 되지만 한국에서는 20여 종이 재배되고 있다.
처음에는 국광·홍옥·축·왜선 등이 주종을 이루었지만, 그뒤 인도·딜리셔스·골든딜리셔스 등도 재배되었으며 요즘에는 후지, 홍로, 아리수, 감홍, 썸머킹, 시나노골드, 양광, 산사등의 신품종이 점점 많아지고 있다.
사과의 품종은 수확기에 따라 조생종, 중생종, 만생종으로 나뉘는데, 조생종으로 썸머킹등이, 중생종으로 스가루, 홍로, 아리스, 세계일, 조나골드, 홍옥 등이 있으며, 후지등의 만생종이 있다.
가) 계림유사(鷄林類事, 1103) : 고려 의종 (1083~1105) 때 M.asiatica가 ‘임금(林檎)'으로 표기되어 지금의 능금의 어원이다.
나) 조선시대 : 홍만선(洪萬選)의 산림경제(山林經濟)에 사과 재배법에 대한 기록이 있다.
다) 현재 재배되는 M.domestica사과 : 조선 중기 효종때 중국에서 전래되었다는 남강만의 기록이 있다.
○ 현재의 개량 사과 재배 시작 : 1884년경부터 선교사들이 사과나무를 들여와 재식
○ 1905년 전후 : 서울, 대구, 인천, 진남포, 황주에 일본인들이 재식
○ 1901년 : 윤병수 (尹秉秀)가 국광, 홍옥등으로 원산 부근에 과수원 조성하여 좋은 성과를 거두며 경제적 재배의 시작.
○ 1905년 : 함경도 관찰사가 일본에서 사과묘목 6000주를 도입, 재식
홍괴( Red Astrachan), 왜금(Ben Davis), 축(American Summer Pearmain), 유옥(Smith Cider), 홍옥, 욱 등
○ 1906년 : 뚝섬에 12ha규모의 원예 모범장을 설치
각국에서 과수 품종을 도입, 품종비교 및 재배시험 수행.
육묘도 하여 과수재배 기초 확립
○ 1958년 : 원예시험장 설립하여 과수연구 본격 수행하여 사과재배의 기술을 개발하기 시작함.
○ 1972년 : 왜성사과가 보급되면서 재배 면적 급증한다.
○ 1991년 말 : 원예시험장에서 과수연구소를 분리, 대구사과연구소 설립하여 사과연구를 전담한다.
○ 1995년부터 신선 사과가, 1996년부터 사과쥬스 개방
○ 식물 방역법상 생과수입을 금지하는 한편, 1996년부터 M.9 대목을 이용한 초밀식 재배 기술을 보급.
우리나라 사과재배면적은 1995년 5만ha에서 2002년 2만 6천ha로 감소한 이후 2003년부터 다시 증가하고 있다.
2011년 재배면적은 2006년에 비해 10.1%가 증가한 31.2천ha이다.
한편 생산량은 재배면적의 증감에 따라 변화하고 있는데, 2000년 이후 400천t∼500천t 정도를 유지하고 있다.